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
― 파란 눈의 선교사가 목격한 조선의 격동과 숨결
🧭 서양 세계에 ‘조선’을 알린 첫 이방인, 제임스 S. 게일
1888년, 스물다섯의 청년 선교사 한 명이 조용히 부산항에 발을 디뎠다. 그의 이름은 제임스 스카스 게일(James Scarth Gale). 서양인에게는 낯설기만 했던 ‘조선’이라는 나라에 온 이 청년은 이후 무려 40여 년을 이 땅에서 살아가며 조선의 역사, 문화, 언어, 그리고 사람들과 함께 호흡하게 된다.
게일은 단순한 선교사를 넘어, 조선의 언어와 문화를 깊이 이해한 지식인이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한영사전》을 펴냈으며, 《구운몽》, 《춘향전》, 《심청전》 등 한국의 고전문학을 영어로 번역해 서양 세계에 ‘조선’이라는 나라의 감성과 지혜를 처음으로 전한 인물이기도 하다. 그는 또한 존 번연의 《천로역정》을 우리말로 옮겨 소개하며 양국 문화의 가교 역할을 감당하였다.
🕯️ 역사의 한복판에서 기록된 생생한 조선의 모습
그의 대표작인 『Korean Sketches』는 1888년부터 1897년까지, 조선왕조의 말기 10년을 기록한 책이다. 이제 한국어로 정식 번역된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은 당시 조선을 관찰한 외국인의 시선 속에 살아 있는 역사를 담고 있다.
그가 본 조선은 ‘은자의 나라’였다. 세상과 단절된 채 고요히 자신만의 문명을 지켜오던 곳. 그러나 게일이 목격한 시기의 조선은 더 이상 고요하지 않았다. 을미사변, 명성왕후 시해, 아관파천 등 격변의 순간들이 잇달아 발생하며 나라의 근간이 흔들렸고, 그는 그러한 현장을 서양의 문체로 세밀하고도 절제 있게 기록해냈다.
📜 왜 지금, 이 책을 다시 읽어야 하는가?
이 책은 단순한 여행기나 선교 일지가 아니다.
이것은 곧, 대한제국이 태동하기 직전, 조선의 마지막 숨결을 기록한 외국인의 생생한 현장보고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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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교과서에서만 배웠던 ‘아관파천’이 실제로 어떤 분위기 속에서 벌어졌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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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왕후의 죽음이 어떤 공포와 혼란을 남겼는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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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들은 당시 조선을 어떻게 이해하고 있었는지
이 모든 것이 제임스 게일의 눈과 손끝을 통해 지금 우리에게 전해진다.
✨ ‘기록은 기억을 이긴다’ — 서양에 조선을 최초로 소개한 한 권의 책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은 출간 당시 미국과 영국, 캐나다 등에서 큰 주목을 받았다. 서울역사박물관에도 초판이 전시되어 있을 만큼, 이 책은 조선을 세계에 최초로 알린 문헌으로서도 큰 가치를 지닌다.
오늘날 우리는 이 책을 통해 스스로 보지 못했던 우리의 과거를, 제3자의 눈을 통해 다시 들여다볼 수 있다. 조선이 어떻게 세계사의 소용돌이 속으로 들어갔는지를, 그리고 그 격랑을 안고 끝내 살아남은 백성들의 모습을, 게일은 너무도 조용히, 그러나 너무도 정확하게 기록했다.
📘 『조선, 그 마지막 10년의 기록』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조선 말기 격변기의 역사를 깊이 이해하고 싶은 독자
✅ 한국사를 세계사적 시선으로 바라보고 싶은 연구자
✅ 외국인의 시선 속에서 발견하는 우리 문화의 진면목이 궁금한 이들
✅ 조선 문학과 민속에 대한 애정이 깊은 역사 애호가
✍️ 마무리하며:
“그는 조선인을 위해 왔지만, 조선을 이해하려 했다.”
제임스 게일은 단지 서양의 선교사가 아니라, 조선을 사랑했던 관찰자이며 통역자였다.
그가 남긴 이 기록은 서양이 처음 본 조선의 얼굴이자,
지금 우리가 다시 바라봐야 할 우리의 거울이다.
지금, 다시 조선의 마지막 10년을 걷다.

『바다를 품은
백두산』
📘 『바다를 품은 백두산』
―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모든 이들의 자서전”
🇰🇷 한 세대의 기억, 한 사람의 기록이 나라를 지킨다
『바다를 품은 백두산』은 단순한 회고록이 아니다. 이 책은 한 세대가 온몸으로 지켜낸 나라, 대한민국에 바치는 선언이자 기도이며, 전쟁과 분단의 시대를 온몸으로 관통한 한 인물의 삶 속에서 피어난 애국의 본질을 보여주는 살아 있는 증언이다.
책의 주인공 최영섭 대령은 대한해협 해전의 영웅으로, 그 삶 자체가 한국 현대사의 굴곡과 겹친다.
책을 펼치면 우리는 한 사람의 기억 속에서 나라의 운명을 읽는다.
📖 전쟁 세대, 그들은 누구였는가
선우정 논설위원은 이 책을 읽으며 자신의 아버지 세대를 떠올렸다고 고백한다.
1920년대에 태어나 일본 제국의 식민 교육을 받았고, 해방 후 남한을 지키기 위해 6·25 전쟁에 참전한 이들이었다. 그들은 평생 공산주의를 배격하며 자유주의를 옹호했다.
“이 책은 마치 우리 아버지의 자서전을 읽는 것 같다.”
이 말은 단지 공감의 언어가 아니다.
『바다를 품은 백두산』은 바로 그러한 전쟁 세대 전체의 자서전이 될 수 있는 책이다.
🧭 대한민국을 향한 ‘그들의 건배사’
책 속의 에피소드는 단지 감동에 머물지 않는다.
예컨대 대한해협 해전에서 중상을 입은 장병들에게 “이겼다, 정신 차려!”라며 외치던 최 대령은, 마지막 숨을 몰아쉬며 "대...한...민...국..."이라는 말을 끝맺지 못하고 눈을 감은 병사의 손을 잡으며 그 의미를 마음으로 전해 받았다.
그 말의 끝은 “대한민국 만세”였고, 그들 세대가 지키고자 했던 나라의 이름 그 자체였다.
오늘날에도 그는 술자리에서 **“대한민국!”**을 외치고, 아들과 손자는 **“만세!”**로 화답한다.
이 단순한 건배사는, 아마도 죽어간 전우들이 남기고 가지 못한 마지막 말을 대를 이어 반복해주는 것일지 모른다.
🏠 향토를 잃은 자의 애국, 진짜 ‘패트리어티즘’
이 책을 관통하는 핵심 키워드는 애국심이다.
그러나 그 애국은 구호나 민족주의적 열망이 아니다.
그것은 **고향을 잃은 사람들의 절절한 향토애(鄕土愛)**에서 비롯된,
가장 순결하고 원초적인 **애국(patriotism)**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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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 최영섭 대령은 고향 평강을 다시 밟고자 아들, 손자, 증손자 명의로 7장의 기부 약정서를 ‘경원선 침목 나눔’ 행사에 보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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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마음은 단순한 통일 염원을 넘어, 잃어버린 향토에 대한 정체성과 기억의 복원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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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아스포라의 감정을 지닌 실향민으로서, 그는 향토의 상실을 국가애로 승화시킨 세대의 대표적 인물이다.
👨👩👦 ‘대한민국스러운’ 가족, 군대보다 단단한 공동체
이 책은 동시에 한 가족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최 대령은 자신을 “통합군사령관”이라 부른다.
왜냐하면 삼형제 모두 군인이었고, 아들 넷 모두 군 복무를 마쳤으며, 군종도 육·해·공·해병대를 아우르기 때문이다.
명절 아침 가족행사의 첫 순서가
① 국기 게양 → ② 국기에 대한 경례 → ③ 애국가 제창(4절까지) → ④ 묵념 → ⑤ 예배 → ⑥ 강화(講話)
라는 이 장면은 한 가정이 대한민국이라는 정체성을 어떻게 몸과 생활로 실천하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 민족주의가 아닌 애국주의, 기억의 전쟁에서의 반격
이 책은 ‘대한민국’과 ‘한민족’이라는 개념을 혼동하지 않는다.
민족 개념으로 김일성 정권을 포장하려는 흐름과도 단호히 맞선다.
향토를 잃은 실향민이 선택한 정체성은 민족이 아닌, 국가였다.
이것이 바로 이 책이 보여주는 애국의 본질이다.
오늘날 역사 왜곡이 난무하고, 기억의 전쟁이 벌어지는 시대에
『바다를 품은 백두산』은 하나의 반격이자 기억의 역전 드라마가 될 것이다.
진실한 체험에서 비롯된 서사는 그 어떤 선동보다 강력하다.
📘 『바다를 품은 백두산』은 이런 독자에게 추천합니다:
✅ 대한민국의 정통성과 자유의 가치를 체험과 기억으로 확인하고 싶은 독자
✅ 6·25 전쟁세대의 진실을 알고 싶은 청년 세대와 군 복무 세대
✅ 기억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싶은 자유민주주의 지지자
✅ 최재형 감사원장의 품격과 가치관의 뿌리를 알고 싶은 이들
✍️ 마무리하며:
『바다를 품은 백두산』은 대한민국을 지지하는 모든 이들의 자서전이다.
그리고 이 책이 말하는 애국은, 기억 속의 향토를 위해 목숨 바쳐 나라를 지킨 사람들의 이야기다.
그 기억은 결코 잊혀져선 안 된다. 왜냐하면, 기억이 사라지면, 자유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 “만세!”
이 외침을 우리는, 그리고 다음 세대도 잊지 말아야 한다.
『프렌체스카의
난중일기』

🇰🇷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
― “전쟁 한가운데에서 본 나라와 지도자의 진면목”
📖 전시(戰時)의 대통령, 이승만의 리더십을 기록한 생생한 일지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는 이승만 대통령의 아내이자 동지였던 프란체스카 도너 여사가 기록하거나 그 곁에서 본, 6·25 전쟁기의 일거수일투족을 담은 역사적 증언록이다. 이 책은 단지 개인의 회고가 아닌, **대한민국이 풍전등화 속에서 생존하고 건국의 기틀을 지켜낸 치열한 ‘기억의 전선’**이기도 하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피란길에 오른 대통령, 귀국을 미루던 장면 총리, 국민을 버리고 도피하려는 권력층, 그리고 그에 맞서 ‘한강의 눈물’과 함께 서울로 돌아온 이승만 대통령의 애국적 결단까지, 이 모든 장면은 전쟁사이자 정치사, 그리고 도덕사의 기록이다.
🚨 전쟁통에 도망친 권력층과 청년 이탈, 그리고 장면의 실체
1950년, 국토가 초토화되고 있는 와중에도 특권층 자제들은 해외 유학이나 병역 회피를 위해 줄을 이었고, 여권 발급과 일본 밀항이 급증했다. 심지어 장면 당시 주미대사는 무초 미 대사에게 아들 유학 비자를 부탁했다는 소문까지 돌았다.
이승만 대통령은 무초 대사의 고충을 전해 듣고,
“이럴 때 우리에게 아들이 있어 군에 입대시켜 모범을 보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는가!”
라고 탄식했다.
총리로 임명된 장면은 49일간 귀국하지 않다가 여론을 의식해 마지못해 귀국했고, 신 국방장관은 “한국 체류를 두려워한다는 비난을 의식한 것”이라고 전했다. 국민은 목숨 걸고 싸우는 와중에, 지도자 일부는 ‘해외’에 있었다.
🧨 전쟁 속 정쟁(政爭) ― 위기 속에도 자리다툼
1950년 9월 9일, 대통령은 국회에서 국방·내무장관 해임권고안에 맞서 연설을 했다. 야당은 국회의원 석방을 요구하며 탄핵까지 거론했다. 이승만은 단호하게 말했다:
“헌법이 있다 해도 나라가 없으면 무슨 소용인가? 지금은 전쟁이다. 논쟁은 나라를 되찾은 다음에 하라.”
결국 갈등의 배경은 신익희의 총리직 요구와 장택상의 장관직 요구였다. 나라가 망할 판인데도 정파는 권력을 놓지 않으려 싸우고 있었던 것이다.
⚓ 인천상륙작전의 감격과 ‘만심(慢心)’ 경계
1950년 9월 16일, 맥아더 장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며칠 후, 서울 중앙청에 우리 해병대가 태극기를 게양했으며, 이 소식을 전해 들은 대통령은
“가장 큰 적은 이제 ‘만심’(자만심)이다.”
라고 경계심을 강조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늘
“38선은 오래전에 사라졌다. 우리의 국경은 압록강과 두만강이다.”
라고 천명해 왔고, 정일권 장군은 이에 복종하며 북진 의지를 다졌다.
하지만 미국의 입장은 달랐고, 워커 장군은 38선 이북 진입을 불허하려 했다.
🎖️ 감격의 맥아더 훈장 수여식, 그리고 서울 환도
9월 29일, 이승만 대통령은 서울에 돌아와 중앙청에서 맥아더 장군에게 훈장을 수여하고 감격적인 환도식을 거행했다. 악대도 없고 군악도 없었지만, 이 환도는 나라를 다시 찾은 승리의 상징이었다.
“장군이 국제연합군을 이끌어 이룩한 모든 업적 가운데, 이번 작전은 역사에 길이 남을 것입니다.”
대통령은 진심을 담아 맥아더를 칭송했다.
한강을 건너며 대통령은 눈물을 흘렸고, 시민들은 깃발을 흔들며 눈물로 대통령을 맞았다.
경무대로 돌아간 그는, 도망친 북한 장성 남일이 버린 고급 양복과 술을 발견했다.
이 전리품은 미국 인사들에게 나눠졌다. 상징적으로 “공산당은 도망갔다”는 메시지였다.
🕊️ 평양 연설 ― 이승만식 민족주의의 절정
1950년 10월 30일, 평양 해방 10일 후, 대통령은 태극기 물결로 뒤덮인 시청 광장에서 감격의 연설을 했다:
“우리는 단군의 후손이요, 한 핏줄이다. 이제 다시는 헤어지지 말자.
공산당을 몰아내고 자유와 평화 속에 함께 살자.
어떤 나라도 우리에게 ‘이래라 저래라’ 못한다.
간섭받지도 않고, 받지도 않을 것이다.
(…) 살고 죽는 것도 함께 하자. 4천 년 혈족으로서 하나 되어 뭉치자.”
이 연설은 남북 분열을 뛰어넘어 ‘민족은 하나이며 자유가 우선’이라는 이승만의 철학을 집약적으로 담은 명문이었다.
🏁 결론 ― 이것은 단순한 회고가 아니다, 한 나라의 살아 있는 기록이다
『프란체스카의 난중일기』는 전장(戰場) 속에서 꿋꿋하게 나라를 지킨 대통령의 생생한 기록이다.
도망가는 권력층, 안일한 정쟁, 대혼란 속에서도 이승만은 단호하게, 그리고 감성적으로 국민을 이끌었다.
그는 외세에 굴하지 않았고, 때로는 맥아더 장군과도 정면으로 맞서며 “한국군은 대통령 명령을 따를 것”이라 선언했다.
그가 환호받은 것은 단지 군 통수권자여서가 아니다.
그는 진심으로 나라를 사랑한 지도자였고, 그 진심이 민심을 움직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