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 Journey Exploring the Roots of Our Freedom
2024. 07. 14. - 2024. 07. 28.
141년 전 조선의 보빙사절단 ‘견미단’의 이름을 빌려, 우리는 70년 전 이승만 대통령의 국빈 방미를 기념하기 위해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진정 우리가 갈망했던 것은 단지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원천을 알고자 함이었습니다. 그 자유의 근원을 알지 못했기에, 우리도 모르게 스스로 자유를 버리고 있었던 것입니다.
우남의 숨결이 느껴질 듯한 하와이에서부터 여정은 시작되었습니다. 미국의 4대 건국 정신인 자유, 도덕, 법치, 교육이 결국은 ‘신앙’을 위한 것임을 보여주는 필그림 기념탑, 70년 전 이승만 대통령이 자유의 투사로 환영받았던 뉴욕의 ‘영웅의 협곡’, 청년 이승만이 존 녹스와 장 칼뱅의 사상을 접했을 프린스턴 대학교, 그리고 1776년 미국의 건국 정신 위에 대한민국의 미래를 그렸던 필라델피아와, 우남의 피와 땀이 서린 독립외교의 무대 워싱턴 D.C.까지—
우리는 2주간의 고되고도 행복한 여정을 통해 자유의 뿌리를 더듬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견학지인 바이블 뮤지엄에서,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원천이 다름 아닌, 150여 년 전 미국 선교사들이 조선에 전해준 성경 속에 있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제야, 청년 이승만이 미국에 오기 전 감옥에서부터 외쳤던 진리가 우리 안에서 울려 나왔습니다.
“이 어찌 교회가 정치의 근원이 아니리오!”
아, 자유의 뿌리는 교회였구나.
그래서 우남은 하와이에서 건국을 준비하며, 가장 먼저 한인들의 독립교회를 세웠던 것이었구나.
교회를 깨우는 것이 곧 나라를 살리는 일이었구나.
결국 자유의 원천은, 한성감옥에서 청년 이승만을 만나주신, 우리 하나님이셨습니다.

한인기독교회
이승만 대통령
동상 앞에 선 견미단
'이 여덟 섬에 한인 아니 가 있는 곳이 없으니 가위 조선 팔도라. 장차 이 속에서 대조선을 만들어 낼 기초가 잡히기를 바랄지니 하나님이 십 년 전에 이리로 한인을 인도하신 것이 무심한 일이 아니 되기를 기약하겠도다.' ('태평양 잡지' 1914년 6월)
오하우 묘지에서
추모와 헌화
1911년 12월에 안장된 첫 한인 이민자를 시작으로, 독립운동가이자 이승만 대통령의 수양딸 김노디 등, 900여명의 이민자가 이곳에 묻혔다.
하와이 이민 120주년을 기념한 2023년에는 이들 이민자 중 20명이 대한민국 독립유공자로 추서되었고, 묘지 중간 왼쪽 끝에 하와이에서 독립운동을 지원한 이민자들을 추모하는 헌정비가 세워졌다. 헌정비에는 박민식 당시 보훈처장의 ‘고맙습니다’라는 글귀가 있다.


칼리히 초등학교
(옛 한인기독학원)
1914년 7월 우남이 하와이 호놀룰루에 기숙사를 설립하고 각 지역에서 모인 여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교육한 것이 한인 기독학교의 모체다. 1918년 9월에 한인기독학원이라는 이름으로 개칭하고 본격적인 민족교육을 실시하였다.
1921년 2월 킬리히 분지에 4,000에이커의 토지를 구입, 교사를 신축하였고 1922년 9월에 낙성식을 거행했다. 한인기독학원은 설립 이후 1928년까지 10년 동안 기숙학교제도를 운영하며 소학교 6년 과정까지 교육하였고, 학생 수는 90명에 이르렀다.
개교 이후 150명의 졸업생을 배출하였으며 우남은 1952년 이 학원을 매각한 18만 달러를 기금으로 인하(인천-하와이)공과대학을 설립하였다. 현재 이 학교가 있는 도로명은 쿨라콜레아(Kula Kolea)', 즉 하이와 '한국학교'라는 뜻이다.

메이플라워호 앞에서
1620년 11월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온 102명의 필그림들이 정착한 곳이다. 도착 1년 만에 절반이 추위와 풍토병으로 사망했다. 그럼에도 이듬해 원주민들을 초청해 추수감사를 드렸던 기록이 지금의 미국 추수감사절 전통으로 이어진다.
메이플라워 도착 2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다니엘 웹스터는 필그림들을 “미국 시민자유와 종교 자유의 창시자들”이라고 칭송했다. 그리고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미국의 뿌리가 1607년 버지니아 제임스타운 정착촌에 있기보다 1620년 플리머스에 있음을 설파했다. 이후 미국 전역을 순회하며 미국의 민주주의를 연구한 알렉시스 디 토크빌도 이들의 청교도 정신이 “미국 민주공화 정치철학의 근간”이 되었다고 썼다. 그들은, 비록 현대 기준의 자유민주주의자들은 아니었지만, 그들의 삶의 양식과 태도를 통해 ‘왕이 아닌 법 아래 자유’를 신대륙에서 실험했다.
헤리티지 재단의 케이 제임스 전 회장은 200 단어 미만의 짧은 메이플라워 서약에는 “종교의 자유와 법치, 그리고 사유권을 확립한 미국의 뿌리를 찾을 수 있다”라고 말한다. 실제로 메이플라워 서약은 미국 헌법의 원형으로 여겨질 만큼 그로부터 150년 후 세워질 미국의 자유민주공화정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프린스턴 대학
존 위더스푼 동상
1746년에 당시 뉴저지 대학교로 세워진 프린스턴 대학교는 내륙에 위치한 지리적 불리함 때문에 학생 유치에 어려움을 겪었다.
하지만 1768년 총장으로 초빙된 존 위더스푼이 대학 커리큘럼을 전면 수정해 정통 개혁주의에 입각한 정치사회 인문교육을 도입했고, 곧 제임스 매디슨을 비롯한 위대한 미국 정치지도자들을 배출시켰다.
위더스푼은 스코틀랜드 존 녹스의 직계 후손이자 정통 장로교 목사였다. 그는 또 한 뉴저지 주 대표로 1776년 2차 대륙회의에 참가했으며, 미국 독립선언문에 서명한 유일한 목회자 이자 대학 총장이기도 하다.

리틀씨어터
이승만과 서재필은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150여명의 한인과 미국인을 초청해 이 극장에서 ‘제1차 한인회의’를 열었다. 하와이는 물론 유럽에서도 한인들이 와서 참석했다.
1919년 4월 14일부터 16일까지 미국 필라델피아 리틀씨어터에서 열린 제1차 한인회의의 결의안의. 원제는 ‘한국인의 목표와 열망’이다. 유일한이 영어로 초안을 작성한 이 10개 요지는 이후 이승만 대통령이 우리말로 ‘건국의 종지(宗旨)’라고 번역하였을 만큼 훗날 대한민국 헌법의 기초가 되었다.


리버티 벨(Liberty Bell)
미국 자유의 상징
1776년 2차 대륙회의에서 독립선언서가 승인되었을 때 울렸다고 전설처럼 알려진 리버티벨은 사실 버려진, 제대로 울리지도 못했던 종이었다. 1751년 펜실베이니아 주 의장이었던 아이작 노리스가 런던에서 주문 제작한 것이었는데, 필라델피아에 도착 후 하역하는과정에서 깨져버린다. 주조공인 찰스 스토우와 존 패스가 두 번이나 종을 다시 녹여서 제작해보지만, 수개월의 작업 끝에 나온 결과물은 실패작이었다. 종은 낭랑하게 울리기는커녕 그냥 무거운 쇠가 부딪히는 둔탁하고 거북한 소리만 냈다. 급기야 종의 전면에는 뚜렷한 균열이 생겨났다.
하지만 종의 머리둘레에 적혀 있는 "이 땅에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라"라는 레25장 10절 구절 때문에 19세기 초 노예제 폐지론자들은 이 종을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라는 미국 독립정신의 상징으로 삼으며 노예 해방을 호소하였고 결국 노예 해방 이후 리버티벨은 '미국 자유의 상징'으로 널리 알려져 전 세계 박람회에 전시되었다. 냉전 시기 트루먼 대통령은 55개의 리버티벨 복제품을 만들어 전국 50개 주와 영토 및 세계 주요 도시에 기증하기도 했다.

링컨 기념관
(Lincoln Memorial)
제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기념하는 이 메모리얼은 1914년부터 1922년까지 8년에 걸쳐 지어졌다. 건물을 두른 기둥 36개는 링컨 사망 당시 미국 연방의 36개 주를 의미한다. 링컨 기념관 앞 계단에서는 1963년 마틴 루터 킹 목사가 내셔널 몰에 운집한 군중 25만 명에게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라는 연설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내부에는 링컨의 석상 양옆으로 링컨의 가장 대표적인 두 연설인 게티즈버그 연설과 2차 취임식 연설이 새겨져 있다. 이승만 대통령은 1954년 방미 당시 메모리얼 다리 건너 알링턴국립묘지에 다녀오다가 이곳에도 들러 헌화를 하며 ‘링컨이라면 한국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태산 묘지
(Rhee Tae-san's Grave)
우남에게는 첫째 부인 박씨에게서 1899년에 태어난 아들 ʻ태산’이 있었다. 태산은 이승만이 미국 조지워싱턴 대학에서 막 학업을 시작했던 1905년 4월 아버지가 있는 미국에 왔다가 이듬해인 1906년 2월 25일 필라델피아 시립병원에서 디프테리아로 숨을 거두었다

헤리티지 재단
(The Heritage Foundation)
헤리티지 재단(The Heritage Foundation)은 1973년에 설립된 미국의 대표적인 보수 성향 싱크탱크로, 작은 정부, 자유시장경제, 전통적 가치, 강력한 국가 안보를 핵심 이념으로 삼고 정책 연구와 입법 자문을 수행한다.
워싱턴 D.C.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공화당을 비롯한 보수 정치 세력에 큰 영향을 미치며, 레이건 행정부의 정책 설계에 핵심적 역할을 한 것으로 유명합니다. 현재까지도 미국 보수주의의 이론적 기반과 전략적 방향을 제공하는 중심 기관이다.



필그림 기념탑
(Pilgrim Monument)
1620년 메이플라워호를 타고 미국에 도착한 필그림 파더스(Pilgrim Fathers)를 기리고자 1889년에 완공된 이 대형 기념비는 미국에서 가장 큰 화강암 조각상 중 하나로, 제일 중앙 상단에 에 “신앙(Faith)”을 상징하는 25미터 높이의 여성상이 오른손은 하늘을 가리키며 왼손에는 성경이 들고 서 있다.
이 ‘신앙’을 떠받드는 기념비의 네 면에는 각각 “자유(Liberty)”, “교육(Education)”, “법(Justice)”, “도덕(Morality)”을 상징하는 좌상이 배치되어 미국 건국의 최상위 가치가 무엇인지 드러낸다. 또한 이 각각의 가치 양 옆에는 그 가치의 수호를 위해 필요한 두 요소들도 함께 새겨져 있다. 바로, 자유에는 폭정(Tyranny)[으로부터의 해방]과 평화(Peace)가, 교육에는 젊음(Youth)과 지혜(Wisdom)가, 법에는 공의(Righteousness)와 자비(Mercy)가, 그리고 도덕에는 선지자(Prophet)와 전도자(Evangelist)가 새겨져 있다.

바이블 뮤지엄
바이블 뮤지엄(Museum of the Bible)은 미국 워싱턴 D.C.에 위치한 세계 최대 규모의 성경 전문 박물관으로, 2017년 11월에 개관했다. 약 4만 점 이상의 유물과 전시물을 통해 성경의 역사, 이야기, 그리고 세계 문화에 끼친 영향을 소개하며, 방문객들이 성경의 다양한 측면을 체험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견미단 일지
- 견미단 출발 일주일을 앞둔 7월 6일 오후, 정동 배재학당 역사박물관에서 발대식이 진행되었다. 인보길 뉴데일리 회장이 축사를 하고, 청소년 대표의 다짐 낭독, 한서영 홀리원코리아 대표의 특강 (조선 개화와 정동, 그리고 이승만), 조평세 단장의 오리엔테이션이 있었다.
- 이후 배재학당 뜰에 있는 아펜젤러 동상 앞에서 기념촬영을 한 후 이승만대통령기념재단으로 이동하여 후원금을 전달받 았다. 이어 덕수궁 돈덕전으로 이동하여 기념사진을 촬영하고 해산하였다.
- 7월 14일 일요일 오후 5시 인천공항에서 집결하여 9시 30분 출국하였다. 현지 시각으로 오전 11시 30분에 호놀룰루에 도 착해, 알라모아나 해변에서 점심식사를 하며 하와이 일정을 시작했다. 우연히 같은 장소에서 야유회를 갖게 된 전 한인기독교회 양효직 목사와 전 하와이 동지회 회장인 에드먼드 황 장로를 만나게 되었다. 영화 '건국전쟁'에도 출연한 에드먼드 황 장로는 이승만 대통령의 삶에 대한 짧은 메시지를 전했다.
- 14일 오후 2시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감리교로부터 독립하여 설립한 한인기독교회를 방문하여 허상기 한미동맹재단 사무 총장의 메시지를 들었다. 허 사무총장은 어느 때보다도 물질 적 풍요를 누리고 있는 대한민국의 정신문화가 피폐해짐을 지적하며, 대한민국이 자유로운 나라가 되어야 함을 역설하였다.
- 이어, 900여명의 한인 이민자가 묻혀있는 오하우 공동묘지를 찾아, 이승만 대통령의 수양딸인 김노디의 묘지와 한인기독교 회 초대 목사인 민찬호 목사의 묘지에 헌화하였다. 또한, 모든 한인 이민자를 기리며, 박민식 전 보훈처장이 2023년에 세운 헌정비에도 헌화하였다.
- 오후 4시 30분에 Pagoda 호텔에 체크인 후, 한국과 하와이 의 역사적 관계를 연구하는 고등학생단체 KHHC(Korea Hawaii History Club)와 만남을 가졌다. 이승만 대통령의 행적과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기 위해 지난 6월 한국을 답사한 KHHC 단원들의 한국 방문 감회와 내년 재방문 계획을 들었다. 이후, 53명의 견미단원 전원의 자기소개로 하와이에 서의 첫 일정이 마무리 되었다.
- 15일부터는 매일 아침 조별로 조식과 함께 성경말씀 묵상 시 간을 가졌다. 본문은 미국 독립혁명 당시 미국의 국부들이 가 장 많이 참고하고 인용하였던 것으로 밝혀진 성경 본문을 조 평세 단장이 전달하였다.
- 15일 일정은 이승만이 숨을 거둔 마우나라니 요양원(Maunalani Nursing and Rehabilitation Center)으로 시작했다. 요양원 CEO인 Sai Chantavy이 직접 투어를 가이드하며 이승만 대통령이 머문 호실을 보여주었다. Chantavy는 당시 이승만 부부가 병원비를 낼 형편이 되지 않아 마우나라니 요양원이 무료로 요양 시설과 서비스를 제공하였다고 했다.
- 점심 식사 후 오후 2시에는 하와이 주 의사당 뜰에 있는 한 국전쟁참전용사 기념비를 방문하여 헌화하였다. 이어, 샘 사 토루 콩 (Sam Satoru Kong) 하와이주 하원의원과의 간담회 를 가졌고, 한국계 미국인인 Sylvia Luke 하와이주 부주지사 의 사무실을 견학했다.
- 오후 4시에는 이승만이 한인 여학생들에게 한국어를 교육하 며 한인기독학원으로 발전한 교육시설이 있던 부지에 세워진 칼리히 초등학교를 방문하였다. 한국전쟁 직후 하와이 한인들 은 이 부지를 팔아 인하대 설립에 기여하였다. 또한, 이승만 의 50년 지기인 윌리엄 보스윅(William Borthwick)의 저택 이었으나, 보스윅의 기부로 현재는 학교 시설이 된 Hawai Baptist Academy를 방문하였다.
- 저녁 식사 이후에는 이덕희 하와이 한인 이민연구소장의 강 의가 진행되었다. 이덕희 소장은 이승만이 궁극적으로 원한 것은 기독교 정신에 입각한 민주공화국을 세우자는 것이었으며, 이를 위해 이승만은 교육이 필수적이라고 보았다고 했다.이승만의 교육은 학교 교육에 국한된 것이 아니라 언론 활동 을 통한 대중 계몽을 아우르는 것이었다고 했다.
- 16일 첫 번째 일정으로는 진주만 기념 공원을 방문하여 진주만 공습으로 난파된 애리조나 호(USS Arizona)를 둘러보았다. 점심 식사 이후, 동지회 회원들이 묻혀있는 칼라하 묘지에 방문하여 헌화하였다. 이후, 화산 폭발로 형성된 다이아몬드 헤드(Diamond Head)를 하이킹했다.
- 저녁 7시에는 '이승만과 원자력'이라는 제목으로 손영광 교수 의 강의가 열렸다. 손 교수는 원자력 발전에 대한 부정적 인 식이 비과학적임을 명증하였고, 원자력 발전의 대안으로 거론 되는 태양광과 풍력 발전의 비효율성을 논하였다. 또한, 대한 민국이 원자력 발전 강국이 되는 데에 초석을 놓은 이승만 대통령의 혜안과 노력에 대해 설명하였다.
- 17일에는 조식과 묵상 나눔 이후, 오후 2시 50분 항공편으로 보스턴으로 이동했다.
- 7월 18일 보스턴 도착 후, 청교도 목사 존 하버드가 세운 하버드 대학교를 견학하였고, 이승만이 석사과정 수강 시절 살 았던 곳으로 밝혀진 주택을 방문하여 기념사진을 촬영하였다.
- 18일 두 번째 일정으로는 메이플라워 호를 타고 온 102명의 필그림이 정착한 곳인 플리머스 지역을 방문했다. 필그림들을 기념하는 필그림기념탑(National Monument to the Forefathers)과 메이플라워호를 똑같이 구축한 메이플라워 2 호와 플리머스락을 관람하였다. 플리머스 지역 관광 후, 뉴욕 으로 이동해 숙소에 체크인 하며 18일 일정을 마무리하였다.
- 19일 일정은 뉴욕 프라미스교회에서 열린 '이승만 대통령 서 거 69주기 추도 예배' 참석으로 시작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여호와는 나의 기업"이라는 제목으로 메시지를 전한 한국 총회장 김남수 목사는 이승만 대통령은 바울의 회심에 비견 되는 복음에 대한 확신, 체험, 중생이있었음을 강조하며, 개개인 모두가 영혼을 사랑하는 열정과, 뜨거운 애국심과, 인류 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으로 충만할 것을 강조하였다.
- 뉴욕 시청으로 이동하여 이승만 대통령이 국빈 방미 당시 차 량 퍼레이드를 받았던 영웅의 협곡(Canyon of Heroes)을 걸으며 세인트 폴 교회와 해밀턴 묘지 등을 방문하였다.
- 이후 프린스턴으로 이동하여 곧바로 조평세 단장과 손영광 부단장의 특강이 진행되었다. 조 단장은 자유 민주주의 기독교 입국의 세계관을 확립한 존 위더스푼(John Witherspoon), 제임스 매디슨James Madison),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이승만 간의 연계성에 대해 강의하였다. 손 부단장은 사람들의 두려움을 자극해 경제적 이득 을 보며 거짓을 선동하는 환경 종말주의의 허구성과 과학주의의 한계와 위험성에 대해 강의하였다.
- 20일 오전 9시, 이승만 대통령이 박사 학위를 받은 프린스턴 대학을 방문하였다. 정운찬 전 총리를 비롯한 프린스턴 대학 동문들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이승만 강의실(Syngman Rhee 1910 Lecture Hall)에서 남신우 북한인권 운동가와 진단시 약 분야 세계 권위자인 강제모 박사로부터 짧은 강의와 격려 의 말씀을 들었다.
- 점심 식사 후 필라델피아로 이동하여 서재필, 이승만 등이 주관한 '제1차 한인회의'가 열린 리틀시어터를 견학하였다. 이후 서재필 기념관으로 이동하여 서재필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고 서재필 관련 전시물들을 관람하였다. 저녁에는 우남 네트워크(황준석 공동대표)로부터 한식당 식사 대접을 받았다.
- 21일 오전 7시 30분에 큰믿음제일교회 1부 예배에 참석하였 다. 황준석 담임목사는 '담을 뛰어넘자'라는 설교제목으로 가 정에서도 사회에서도 인정받지 못하던 다윗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겸손하게 회개하는 믿음으로 하나님 마음에 합한 자라 는 칭호를 받았음을 상기하며, 다윗과 같이 크게 쓰임 받는 견미단이 되기를 격려했다.
- 오전 10시에는 Enon Tabernacle Baptist Church 예배에 참석했다. Allyn E. Waller 담임 목사는 'Why we need to be saved라는 제목으로 열정적인 메시지를 전했다.
- 오후 2시에는 7살의 나이로 세상을 떠난 이승만 대통령의 유일한 친자인 이태산의 묘지를 방문하여 헌화하였다.
- 오후 3시에는 이 땅 모든 거민에게 자유를 선포하라(레위기 25장 10절)'라는 구절이 적혀 있어 19세기 초 노예제 폐지론자들에게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미국 독립 정신의 상징이 된 리버티벨(Liberty Bell)을 견학했다. 이어 기념품 샵 및 독립기념관(Independence Hall) 등 주변을 조 별로 자유롭게 둘러보았다.
- 오후 6시에는 세계적 건축 기업의 회장으로 오바마 정부에서 건축자문위원을 역임하기도 한 하형록 목사의 대접으로 아시 아 뷔페 레스토랑에서 만찬을 가졌다.
- 22일 일정은 한국전에서 전사한 600여명을 기리는 필라델피 아 한국전쟁기념비와 19세기 기근을 피해 미국으로 온 아일 랜드 사람들의 고통을 추모하는 Irish Memorial 방문으로 시작하였다. 이후, 현재까지 의회 건물로 끊이지 않고 사용된 곳으로는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의회이자, 조지 워싱턴이 미 대륙군의 총사령관직을 사임하고 파리 조약이 비준된 곳인 메릴랜드 주 의회를 견학하였다.
- 이후 워싱턴DC 도착 후 11명의 대원은 YAF (Young Americas Foundation) 컨퍼런스로 이동하였고, 나머지 42 명의 대원은 숙소로 이동하여 남은 견미단 일정을 이어갔다.
- 저녁 7시에는 Family Research Council에서 성경적세계관 센터장을 역임하고 있는 David Closson의 강의가 진행되었다. Closson은 100여 년 전 부터 퍼지기 시작한 자유주의 신학에 의해 성경의 권위가 훼손되었고, 이로 인해 낙태나 젠더 이슈 등에 대해 반성경적인 입장이 교회 안에 나타나기 시작했음을 지적하였다. 낙태가 죄임을 성경을 근거로 설명하는데 초점을 두며, 크리스천들이 여러 사회 문제에 대해 성 경적 세계관을 확립해야 할 필요성을 역설하였다.
- 7월 23일은 16대 대통령 에이브러햄 링컨을 기념하는 링컨 메모리얼(Lincoln Memorial) 방문으로 하루 일정을 시작했다. 조평세 단장은 이승만 대통령이 국빈 방미 시 링컨 메모 리얼에 헌화를 하며 '링컨이라면 한국이 처한 상황을 잘 이해했을 것'이라 했음을 언급했다.
- 링컨 메모리얼 근처의 베트남 참전 용사 기념 공원(Vietnam Veteran Memoria)과 알링턴 국립묘지(Arlington National Cemetery)로 이어지는 다리를 돌아본 후, 한국 전쟁 기념 공원을 방문하여 한국전 참전 용사들을 추모했다.
- 오전 11시에는 북한 구원과 복음 통일, 대한민국과 이스라엘 을 위해 매주 워싱턴DC National Mall에 모여 기도하는 통 일 광장 기도회에 참석하여 조평세 단장이 특강을 하고 전 견미단원이 특송을 하였다. 또한 행인들에게 중국의 탈북자 북송 실태와 북한에서 자행되는 홀로코스트에 대한 전단지를 나눠주었다. 대한민국과 북한 문제에 관심을 가지고 반중 활 동을 해오고 있는 Natali가 지나가다가 전단지 내용을 보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대한민국 애국가를 헌정했다.
- 점심 이후, VOC (Victims of Communism)을 방문하여, 러시아 혁명으로부터 시작된 공산주의의 역사와 공산주의가 남 긴 상처와 피해에 대한 전시를 관람하였다. 또한, 북한의 압 제로부터 탈출하며 손가락과 다리를 잃은 지성호 의원의 삶 에 대한 다큐멘터리를 시청하였다. 이어 VOC의 회장이자 CEO인 Bric Patterson의 강의가 이어졌는데, Patterson은 공산주의는 유물론에 기인하며, 소수 권력 집단의 이익을 위 해 다수의 개인을 희생시키고, 폭력과 거짓을 수단으로 삼기 때문에 기독교와 어울릴 수 없음을 역설하였다.
- 오후 3시에는 백악관을 지나 이승만의 벚꽃나무가 심겨져 있 는 아메리칸 대학을 둘러보았다. 저녁식사 이후에는 견미단원 들의 소감 나눔이 이어졌다.
- 24일 일정은 헤리티지 재단 방문으로 시작하였다. Brenda Hafera는 미국의 건국 문서에 대해 강연하며, 독립선언문은 당시 미국의 정신에 기초한 원칙을 명시한 것이고, 헌법은 이 원칙에 따른 정부의 제도와 구성에 대해 구체화한 것임을 설명했다. Jay Richards는 젠더 이데올로기에 대해 강의하 였다.
- 헤리티지 재단에서의 강연 이후, 워싱턴 국립 공문서관 (Archives of the United States of America)을 방문하여 독립선언서(Declaration of Independence)와 헌법 (Constitution) 원본을 살펴보았다. 이어 이승만 대통령의 연설을 송출하였던 VOA(Voice of America) 외관을 둘러 보고 성경박물관(Museums of the Bible)을 관람하였다.
- 25일 새벽 2시 30분에 버스를 타고 뉴욕으로 이동하여, 오전 10시 비행기로 호놀룰루로 이동하였다. 오후 3시에 주 호놀룰루 대한민국 총영사관을 방문하였다. 이서영 총영사는 하와이가 한인 이민의 출발이 되었고 독립운동의 근거지가 되었음을 상기시켰고, 또한 하와이가 한국의 유일 동맹국인 미국 의 전력이 집중되어 있는 곳으로 우리나라 안보에 지극히 중요한 곳임을 설파하였다.
- 오후 5시 반에, 김명혜(애니챈) 회장이 준비한 펜트하우스 루프탑에서의 만찬을 갖고, 김 회장 및 한미동맹재단 관계자로 부터 덕담과 격려의 말씀을 들었다. 숙소로 복귀 한 후, 알라 모아나 해변에서 견미단원들의 소감 나눔을 가진 뒤 하루를 마무리하였다.
- 26일 오전에는 짧은 자유시간을 가진 후 공항으로 출발하여 인천행 비행기에 탑승하였다. 27일 오후 7시에 인천국제공항 에 도착하여 해산하였다. YAF 컨퍼런스에 참석한 11명의 단원들은 27일까지 워싱턴 DC에 머물다가 28일 귀국하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