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스크린샷 2025-06-24 오전 10.40.48.png

 『박정희가 옳았다

📗 『박정희가 옳았다』

금기의 정치사에 던지는 정면 돌파의 질문

 

🔥 "5·16과 유신, 정말 아무런 변호의 여지도 없는가?"

이 책은 한국 현대사에서 ‘절대 불가침 영역’처럼 여겨지는 금기에 도전장을 내민다.
5·16 군사정변과 10월유신에 대해서는 지금껏 ‘민주주의 유린’이라는 낙인이 상식처럼 자리 잡고 있었다.
박정희의 경제 성과는 인정하면서도, 정치적 선택만큼은 무조건 비판해야만 ‘정치적으로 올바른’ 태도인 양 통용되어왔다.

그러나 저자는 과감히 묻는다.

“민주주의는 무조건적인 신성한 가치인가? 그렇다면 그것이 실제 국민의 자유와 번영을 저해할 때조차 허용되어야 하는가?”

그는 용기 있게 선언한다.
박정희의 5·16은 근대화 혁명이었고, 유신은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결단이었다.
국가적 위기 속에서 박정희는 해야 할 일을 외면하지 않았으며, 그의 선택은 ‘비르투스(virtus)’—용기의 정치적 덕성이었다고 본다.

 

🇩🇪 서독의 사례로 반박하다

저자는 서독의 헌법 수호 시스템을 언급하며, 단순한 정치적 격식보다 실질적 자유민주주의 수호가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 서독 연방헌법수호청은 위헌 세력을 감시하고 공직 임용 시 철저한 신원 조사를 통해 체제를 지킨다.

  • 그런 강력한 ‘민주주의 방어’의 장치는 오히려 민주주의를 더 성숙하게 만든다.

이러한 점에서, 박정희의 유신체제는 오히려 혼란과 좌경화를 막고, 국가의 근간을 지키려는 체제 수호의 일환이었다는 것이다.

 

🇯🇵 박정희가 이룬 한일협정, 다시 보자

1965년 한일국교 정상화는 이승만의 한미동맹 못지않게 결정적인 국가적 전환점이었다.
하지만 오늘날 반일 감정에 영합한 포퓰리즘 정치로 인해 이 협정의 역사적 의미는 왜곡되고 있다.

  • 박정희는 정치적 손해를 감수하고서라도 국가적 과업을 선택했다.

  • 그 결단은 이후 경제 성장의 기반, 국제적 신뢰 회복, 안보적 균형 강화로 이어졌다.

저자는 한일협정이 오늘날에도 통찰력 있는 리더십의 전범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하며,
국가 이익 앞에서 인기보다 사명을 선택한 지도자 박정희를 재조명한다.

 

❗ “민주화”는 언제나 선(善)인가?

저자 자신이 1980년대 좌익 운동권 출신으로서,
반유신·반독재 운동이 실제로는 공산혁명의 구호와 섞여 있었고,
‘민주화’라는 미명 아래 좌익의 성장 기반이 마련되었다고 고백한다.

  • 용공 조작이 아니라 실제로 많은 지하조직이 좌익 사상에 기반하고 있었으며,

  • 민주화 투쟁이 모두 공산주의자였던 것은 아니지만, 그 틈을 좌익이 교묘히 이용했던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김대중에 대해서도, 그는 대중정치인이자 대선 주자였지만
그의 정책은 세계자유무역의 흐름에 역행했고, 좌파 세력의 우상화 대상이 될 수밖에 없었던 구조적 한계를 지녔다고 지적한다.

 

📌 결론: 박정희는 틀렸는가, 아니면 우리가 모른 척한 것인가?

『박정희가 옳았다』는 단순히 한 정치인을 찬양하는 책이 아니다.
오랜 시간 동안 왜곡되어온 정치적 금기에 정면으로 맞서, 이성적 질문을 던지는 책이다.

  • 박정희의 정치적 선택은 민주주의의 반대편이 아니라, 실질적 국가 생존의 전제였다.

  • ‘민주화’의 이름 아래 이뤄진 투쟁이 어떤 방향으로 흐르고 있었는지,
    그 안에 좌익과 전체주의의 맹아가 어떻게 스며들었는지 성찰할 필요가 있다고 말한다.

이 책은 박정희에 대한 애정이 아니라, 오늘의 대한민국이 잃어버린 현실 감각과 국가 비전을 다시 세우려는 시도이다.

이승만의 
​하와이 30년

스크린샷 2025-06-24 오전 10.45.11.png

📘 이승만의 하와이 30년

- 고난 속에서 민족의 미래를 설계하다 -

 

1️⃣ 하와이, 이승만의 제2의 고향이 되다

이승만은 1904년 고국을 떠나 총 41년간 미국 땅에서 생활했다. 그중에서도 25년간 머물렀던 하와이는 그에게 단순한 이민의 땅이 아니라, 대한민국 건국을 준비하는 창조적 공간이었다.
그는 30대 후반, 하와이에 정착하며 기독교 신앙을 삶의 중심에 두고, 교육자·언론인·목회자·기업가로 활동하며 독립운동을 다층적으로 펼쳐갔다.

 

2️⃣ 하와이에서 다져진 ‘나라 세우기 노하우’

이승만의 하와이 생활은 조국 독립과 건국을 위한 리허설이었다.
그는 단순한 정치망명자가 아니었다. 한인청년을 위한 학교를 세우고 🏫, YMCA를 통해 한인사회의 미국화를 돕고, 자립된 교회를 조직해 신앙공동체를 뿌리내렸다.
또한 ‘동지회’라는 단체를 만들어 정치·경제를 병행하는 새로운 활동 모델을 시도했고, 언론 활동으로 국민계몽에 힘썼다.
📜이러한 모든 활동은 훗날 대한민국 초대 대통령으로서 의무교육, 농지개혁, 경제정책 등의 제도 설계에 고스란히 반영되었다.

 

3️⃣ 좌절 속에서도 일어선 불굴의 신앙과 비전

이승만은 하와이를 단지 정치적 본거지로 여기지 않았다. 지정학적으로 불리한 섬임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는 이곳을 ‘민족을 위한 훈련소’, **‘건국의 내실을 다지는 땅’**으로 여겼다.
여기서 그는 신앙을 심화시키고, 기독교 세계관을 통해 조국의 도덕적 재건을 구상하였다.
그리고 그토록 오랜 시간 준비해온 설계도는, 마침내 1948년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으로 현실이 되었다.

 

4️⃣ 이승만을 지탱한 또 하나의 이름, ‘한인 이민자들’

이승만의 하와이 활동은 한인 이민자 공동체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다.
1902년 12월 인천항을 떠난 그들은 하와이 사탕수수밭에서 땀 흘리며 조국의 독립과 이승만의 비전을 지원했다.
📍1951년, 이승만은 공과대학을 세우며 그들을 기념해 ‘인하대학교’라 이름 붙였다.
그의 기억 속 ‘이민의 역사’는 대한민국 안에서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다.

 

5️⃣ 하와이에 남은 흔적들, 대한민국에 이어지다

  • 그가 세운 ‘한인기독학원’의 부지는 훗날 인하공과대학 설립의 씨앗이 되었고,

  • 교회는 재건되어 광화문에 교회당을 다시 세웠으며,

  • ‘동지회’의 회관 매각 대금은 **‘우남 이승만 장학기금’**으로 남아 지금도 장학금을 지급 중이다.

  • 그의 숯가마 사업 터는 오늘날 주택지로 남아 방문객들에게 기억을 불러일으킨다.

 

🌺 “하와이에서 준비된 이승만, 대한민국을 세우다”

이 책은 단순한 전기나 이민사 서술이 아니다.
**‘왜 대한민국을 세울 수 있었는가’**에 대한 본질적 물음에 답한다.
하와이에서 흘린 땀과 눈물이 없었다면, 대한민국의 건국도 존재하지 않았을 것이다.
민족의 미래를 위해 기도하며, 준비하고, 도전했던 한 사나이의 25년간의 기록이,
이제는 대한민국 국민 모두에게 깊은 성찰과 자부심을 안겨준다.

 『미 해병대
​한국을 구하다

스크린샷 2025-06-24 오전 10.49.12.png

📘 미 해병대, 한국을 구하다

- 가려진 영웅의 전쟁, 해병대의 진실한 기록 -

 

1️⃣ 신화가 된 맥아더, 그러나 그 뒤엔 해병대가 있었다

“맥아더 장군은 6‧25 전쟁의 영웅이다.”
이 말은 익숙하지만, 저자는 과감히 이 통념에 도전한다.
그는 미국과 국내의 수많은 전쟁 관련 저술을 탐독한 끝에, 진정한 전장의 주역은 미 해병대였다고 주장한다.
💡 “맥아더는 전략가였지만, 전선에서 대한민국을 지킨 것은 해병대였다.”

 

2️⃣ 낙동강 방어선, 해병 1여단의 눈부신 투혼

1950년 8월, 부산에 상륙한 **해병 1여단(6,500명)**은 낙동강 방어선의 붕괴 위기 속에서 진동리, 고성, 장촌리 등지에서 결정적 전과를 올린다.
이들은 중장비 부족, 불리한 지형, 무더운 날씨 속에서도 확고한 전투력과 용기로 남침을 저지하며 대한민국의 최후 방어선을 지켜낸다.
⚔️ 이들은 단순한 방어자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생명선을 사수한 숨은 영웅들이었다.

 

3️⃣ 인천상륙작전의 성공 뒤엔 베테랑 해병이 있었다

인천상륙작전은 맥아더의 이름으로 알려졌지만, 실제로는 올리버 P. 스미스 소장과 제임스 도일 중장, 에드워드 크레이그 준장 등 해군과 해병대 장성들의 고난이도 작전 수행 능력이 성공의 열쇠였다.
🪖 "해병대가 없었다면 인천상륙은 성공하지 못했다.”

 

4️⃣ 장진호 전투, 10배의 적을 궤멸시킨 전설

북진 도중 중공군의 개입으로 전세가 극적으로 뒤바뀐 장진호 전투.
이곳에서 미 해병 1사단은 극심한 한파와 포위 속에서도 병력의 절반 이상을 안전하게 철수시키며 중공군을 궤멸시켰다.
지휘관 스미스 장군에 대한 병사들의 믿음은 절대적이었으며, “지옥에서도 데리고 나갈 사람”이라 불렸다.
🔥 이 전투는 6‧25 전쟁사에서 가장 치열하고 숭고했던 장면 중 하나다.

 

5️⃣ 숨겨졌던 해병대의 활약을 역사로 되살리다

왜 해병대의 위대한 전공은 잘 알려지지 않았을까?
그 이유는 대부분의 공식 전쟁사가 육군 중심, 맥아더 중심, 이승만 중심으로 서술되어 왔기 때문이다.
저자는 이 책을 통해 오랫동안 그늘에 가려졌던 해병대의 진면목을 드러내고자 했다.
또한 해병대 장군 스미스의 외손녀 게일 쉬슬러 여사와의 인터뷰는 후손을 통한 감동적 회고를 담아, 그 명예를 오늘에 되살린다.

 

🧭 “진실은 늘 전장의 가장 앞에 있었다”

『미 해병대 한국을 구하다』는 단순한 군사 서술을 넘어, 진실을 기록하는 역사복원서다.
✔️ *“누가 이 나라를 실제로 구했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깊이 있는 대답이 여기 있다.
이 책은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반드시 한 번쯤 읽어야 할 전쟁의 뒷이야기이며,
🇰🇷 자유를 지켜낸 이들의 피와 용기, 그리고 잊힌 이름을 기억하게 해준다.

  • Instagram
  • YouTube

1776 Institute is a think tank based in Seoul, Dedicated to studying and promoting American conservatism in Korea,

which seeks to preserve the Spirit of Independence and the Western Civilization from which it emerged.

1776연구소는 미국의 독립정신과 그 뿌리가 된 서구 자유문명을 보전하려는

영미 보수주의를 연구하고 대한민국에 그 가치를 전파하는 싱크탱크입니다.

Tel : 01059491776

Email :1776institute@gmail.com

1776연구소를 후원해주세요 다음세대에 독립정신을 심겠습니다

우리은행 1005-004-781904 (1776 연구소 후원계좌)

bottom of pa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