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op of page

 『건국과 기독교

스크린샷 2025-09-03 오후 4.30.49.png

🇰🇷 제25장 〈건국과 기독교〉 

 

✝️ 1. 새 나라의 정신적 기초는 기독교여야 한다

한경직 목사는 조선왕조 멸망 이후 40년이 지난 시점에서, 새롭게 건설되는 국가의 정신적 기초는 반드시 기독교여야 한다고 강조합니다. 이는 단순한 종교적 주장이 아니라, 새 나라가 지향해야 할 정치·윤리·도덕적 가치의 토대로서 기독교를 위치시킨 것입니다.

 

🕊️ 2. 민주주의 국가와 기독교의 내적 친화성

한경직 목사는 민주주의를 “새 나라의 진정한 의미”로 보았습니다. 그런데 민주주의는 기독교의 본질적 가치인 다음 세 가지를 바탕으로만 완전하게 실현될 수 있다고 강조합니다:

  • 개인 인격의 존중

  • 개인의 자유

  • 만인의 평등

즉, 기독교 문화라는 밭에서만 민주주의라는 꽃이 아름답게 필 수 있다고 설파합니다.

 

🌟 3. 고상한 도덕국가로서의 비전

새 나라는 단지 정치 체제만이 아니라, 고상한 개인과 사회, 그리고 도덕의 국가가 되어야 하며, 이 역시 기독교 정신에 기반할 때만 가능하다고 말합니다. 기독교는 단순한 신앙이 아니라 사회적 윤리의 뿌리라는 주장입니다.

 

🔆 4. 기독교는 유일한 참된 종교

한경직 목사는 다른 종교와 기독교를 비교하며, 기독교를 태양에, 다른 종교는 달과 별에 비유합니다.

  • 태양이 뜨면 별과 달은 가려지듯, 기독교가 드러나면 다른 종교는 상대적 빛을 잃는다는 것입니다.

  • 이 비유를 통해, 새 나라의 영적 중심은 기독교만이 가능하다는 기독교 신앙의 확신을 드러냅니다.

🧱 5. 기독교는 하나님이 예비하신 건국의 머릿돌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가 조선 말기 한국에 들어온 것이 단순한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에 따른 것이라고 말합니다.

  • 대원군에 의해 박해받고 버림받았던 기독교는 훗날 새 나라의 영원한 머릿돌이 될 것이며, 그 기독교 위에 국가의 토대를 세워야 한다고 주장합니다.

📝 종합 정리

한경직 목사의 「건국과 기독교」는 단순한 종교 담론을 넘어선, 기독교 기반 국가론입니다. 한경직 목사는 기독교를 신앙의 대상일 뿐 아니라 국가 건설의 필수 조건으로 보며, 민주주의, 인권, 도덕, 정의, 교육 등의 핵심 가치가 기독교적 토양에서만 꽃필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헤리티지:
대한민국의 유산

스크린샷 2025-06-24 오후 2.29.15.png

🇰🇷 『헤리티지: 대한민국의 유산』

― 자유, 기적, 그리고 신앙으로 세워진 나라의 감동 서사

 

🌅 1장. 건국의 새벽

1945년 광복, 그리고 분단.
어둠 속에서 한 줄기 희망처럼 떠오른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의 씨앗🌱
많은 이들이 의심했고, 좌우의 이념은 충돌했으며, 대립은 극에 달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새로운 나라를 꿈꾸는 이들이 있었다.
**그 이름은 바로 “대한민국”**이었다.

 

🔥 2장. 선각자의 씨앗

나라 없는 백성으로 살며 절망을 경험한 민중.
그 가운데 먼저 깨어나 자유, 진리, 신앙, 책임을 외친 선구자들이 있었다.
이승만, 안창호, 김규식, 그리고 수많은 이름 없는 청년들…
그들이 뿌린 정신의 씨앗은 후에 ‘건국’이라는 기적으로 자랐다. 🌾
그 씨앗은 곧, 한민족의 역사의식과 자유의식이었다.

 

🇰🇷 3장. 대한민국 건국

1948년, 마침내 헌법 제정과 함께 대한민국이 탄생한다.
이승만은 “자유로운 국민의 나라”를 선포했고,
제헌국회는 신앙의 언어로 시작되는 국호와 헌법을 세웠다.
“하나님이 보호하사 우리나라 만세”
이 나라는 단지 ‘세워진’ 것이 아니라 ‘기획되고 기도된’ 나라였다. 🙏

 

⚔️ 4장. 전쟁과 실패

곧이어 들이닥친 6·25 전쟁,
순식간에 서울은 함락되고 국토는 폐허가 되었지만,
그 잿더미 속에서도 대한민국은 살아남았다.
공산주의가 몰려와도, 민심은 자유를 선택했다.
하지만 정치적 실수와 부정은 존재했고, 그로 인해 새로운 과제가 남겨졌다.
실패는 있었지만, 나라는 무너지지 않았다. 🇰🇷

 

🎩 5장. 정치의 기적

전쟁 후 혼란을 수습하며 민주주의를 다시 세워가는 길.
4·19, 5·16, 유신, 6월 항쟁…
수많은 고난과 도전 속에서도 우리는 표로 정권을 교체할 줄 아는 국민이 되었고,
헌법이 지켜야 할 가치를 스스로 각성하게 된 사회로 성장했다.
이것이 대한민국 정치의 기적이다. 🗳️

 

💰 6장. 경제의 기적

한 줌의 자원도 없이 시작된 맨손의 경제,
그러나 우리는 했다.
포항제철, 경부고속도로, 수출 100억 달러, 중동건설 붐, IT 산업, 반도체 강국…
“한강의 기적”은 단지 경제 수치를 넘어선 인간 의지의 승리였다.
세계는 놀랐고, 국민은 울었다.
가난의 사슬을 끊어낸 것은, 꿈과 땀과 믿음이었다. 💪💵

 

🙏 7장. 신앙의 기적

하나님을 의지하고 기도했던 나라,
부흥회와 새벽기도, 농어촌 교회들과 미자립 교회들…
복음으로 가난을 이겨낸 수많은 가정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병원을 세우고 학교를 만든 선교사들의 헌신.
대한민국의 영혼에는 ‘신앙’이라는 이름의 강이 흐르고 있다.
정치도, 경제도, 교육도 모두 이 강에서 시작되었다. ⛪

 

🕊️ 8장. 대한민국의 유산

오늘의 우리는 묻는다.
우리는 이 나라를 어떻게 지켜야 하는가?
누군가는 ‘과거’라 부르는 것들 속에
사실은 우리가 ‘물려받은 정신’이 있다.
자유, 책임, 신앙, 진실, 공동체…
그것이 이 책이 말하는 ‘헤리티지’다.
그 유산은 지켜야 할 미래다. 🌍📜

 

📚 부록 ― 증언들

이 책은 단지 서술이 아니다.
직접 체험한 증언자들의 생생한 목소리가 담겨 있다.
전쟁을 겪은 노병의 입, 건국을 논했던 학자의 기록, 신앙으로 살아낸 가정의 이야기…
이 모든 증언이 모여 대한민국의 진짜 얼굴을 비춘다.

스크린샷 2025-06-24 오후 2.48.58.png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 『자랑스러운 대한민국』

 

제1장. 대한민국은 어떻게 시작되었을까요?

1948년 5월 10일,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으로 자유로운 선거, 즉 '5.10 총선'이 치러졌습니다. 이는 국민이 직접 대표를 뽑아 나라의 방향을 결정하는, 진정한 의미의 민주공화국의 첫걸음이었습니다. 그렇게 세워진 제헌국회는 국민의 뜻을 담아 대한민국의 헌법을 만들고, 자유와 권리를 보장하는 제도의 기틀을 마련했습니다. 제헌국회 속기록 첫 장을 펼치면 놀라운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바로 “~감사! ~감사! ~감사!”라는 외침과 함께, 하나님께 올려드린 대한민국을 위한 기도였습니다.

이처럼 대한민국은 기도와 감사로 시작된 나라였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1948년 8월 15일, 제헌국회의 힘으로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되면서, 국민이 주인인 자유민주주의 국가의 역사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제2장. 자유민주주의 대한민국은 어떻게 세워졌을까요?

하지만 대한민국이 세워지기까지는 순탄치 않았습니다. 해방 이후 공산주의의 위협이 한반도 전체를 덮쳤습니다. 북쪽에서는 소련이 지배 세력을 키워가며 계획적으로 공산화 정책을 추진했습니다. 이에 반해 남한은 준비가 부족했고, 자칫 나라 전체가 공산화될 수도 있는 위기 속에 있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46년, 이승만 박사는 전북 정읍에서 “남한만이라도 임시정부를 수립하자”는 결단을 내립니다. 이는 단순한 분단의 선언이 아닌, 자유통일을 위한 주도권 확보의 결단이었습니다. 그러나 북한은 단일선거를 끝내 거부했고, 김구 선생과 이승만 박사의 의견도 엇갈리게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한 움직임은 계속되었습니다. 1948년 5.10 총선을 통해 정통성을 가진 정부가 수립되었고, 이는 훗날 자유통일을 위한 중요한 기반이 되었습니다.

(*해당 장의 마지막에는 건국 과정 전체를 정리한 역사 연표가 첨부됩니다.)

 

제3장. 자유민주주의 수호자, 이승만 대통령!

이승만 대통령은 젊은 시절 배재학당에서 서구식 민주주의와 기독교 정신을 배우며, 새로운 나라의 이상을 품기 시작했습니다. 그가 일제에 항거하다 감옥에 갇혔을 때에도, 그 신념은 꺾이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감옥 안에서 그는 기독교적 국가관과 자유에 대한 철학을 더욱 깊이 깨달았습니다.

이승만 대통령은 “동양 최초의 기독교 국가”를 꿈꾸며, 나라의 기틀을 세워나갔습니다. 그는 농민들에게 토지를 돌려주는 농지개혁을 단행했고, 모두가 배울 수 있는 의무교육과 대학 설립을 추진했습니다. 그가 세운 교육정책은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 발전에 큰 초석이 되었습니다.

그는 왜 공산주의를 그렇게 강하게 반대했을까요? 공산주의는 개인의 자유를 억압하고, 신앙과 표현의 자유를 허락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이승만은 **공산당의 당 부당(當 不當)**을 명확히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자유 없는 평등은 진정한 평등이 아니라는 것을 그는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제4장.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의 완성

오늘날 우리는 자유와 번영을 누리는 대한민국에 살고 있지만, 북한은 여전히 자유가 없는 사회입니다. 오랜 세월 동안 우리는 남북이 하나 되어 자유를 누리는 나라를 꿈꾸어 왔습니다.

대한민국은 100년 전부터 꿈꿔 온 자유민주주의 국가였습니다. 제헌국회 당시, 통일을 준비한 여러 상징들이 이를 잘 보여줍니다. 초대 국회의원 이윤영 목사는 개회식에서 통일을 위한 기도를 드렸고, 당시 국회는 북한을 위한 100석의 의석, 10만 평의 통일 국회 부지를 준비했습니다. 그 안에는 탈북민 출신 국회의원과 함께하는 미래까지 내다본 꿈이 담겨 있었습니다.

또한 대한민국 헌법 제3조는 “한반도 전체가 대한민국의 영토임”을, 제4조는 “자유민주적 기본질서에 입각한 통일 정책을 추구함”을 명시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은, 대한민국이 단순히 분단의 현실을 인정한 것이 아니라, 언젠가 올 진정한 자유통일의 날을 준비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렇게 오늘의 대한민국은 수많은 희생과 결단을 통해, 자랑스러운 자유민주주의 국가로 완성되어가고 있습니다.

  • Instagram
  • YouTube

1776 Institute is a think tank based in Seoul, Dedicated to studying and promoting American conservatism in Korea,

which seeks to preserve the Spirit of Independence and the Western Civilization from which it emerged.

1776연구소는 미국의 독립정신과 그 뿌리가 된 서구 자유문명을 보전하려는

영미 보수주의를 연구하고 대한민국에 그 가치를 전파하는 싱크탱크입니다.

Tel : 01059491776

Email :1776institute@gmail.com

1776연구소를 후원해주세요 다음세대에 독립정신을 심겠습니다

우리은행 1005-004-781904 (1776 연구소 후원계좌)

bottom of page